광고하는 사람의 새로운 버릇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어릴 때 나쁜 버릇이 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한편 버릇이라는 건 어릴 때 생기는 것이라는 선입견도 들게 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든의 절반을 넘어서도 새로운 버릇이 생겼습니다. 광고를 하면서 말이죠.
그 동안 참 많은 브랜드와 상품을 경험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진짜 고민이 무엇인지, 솔루션으로 가는 소비자의 진짜 결핍을 무엇인지. 항상 머리 아픈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데드라인을 가지고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전략 가설을 잘 세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가설 수립과 검증의 반복되는 굴레에서 빨리 벗어나, 솔루션과 아이디어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각종 자료와 데이터를 통해 소비자의 경험을 들여다보고, 온갖 분석과 직관력을 동원해 그 경험 속에서 가설을 세우지만, 최근 들어 더욱 정교하게 세분화된 소비자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적어도 2~30년 간의 경험을 추적해 온,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소비자가 있습니다. ‘나’라는 이름의 소비자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개인의 특수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가설 수립 단계에서 직관을 동원하기에는 강력한 무기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 만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겠지요.
그래서 ‘나’의 경험을 분석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제품의 경험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경험을 가장 작은 단위로 해체합니다. 좋다 나쁘다의 단순한 사용 후기가 아닙니다. 경험하는 모든 순간의 감정까지 포함합니다. 회사 건너편 청명의 ‘차돌짬뽕’은 어떻게 차돌 특유의 기름진 풍미를 주면서도 느끼지 하지 않고 깔끔할까? 해산물까지 풍부해서 일까? 톡 쏘는 매운맛 때문일까? 아침을 굶어서 더 맛있는 것일까? 비가 오는 스산한 날씨여서 오늘 따라 특별히 더 좋게 느껴진 것일까? 최대한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고 기분 혹은 느낌까지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지인에게 항상 공유하고 반응에서 느껴지는 차이, 그 이유까지 습관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버릇이죠.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이 제품 어때?’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피 튀기는 프리젠테이션 뒤에 꼭 듣는 말이 있습니다. “홈쇼핑 쇼호스트 같아”. 칭찬으로 듣습니다. 순간 구매욕구를 자극한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단순한 제품 설명이 아니라 누군가와 경험적인 상황이 유사하다면, 사용 상의 감정까지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더 쉽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배민 B마트에서 새로운 과제가 왔었습니다. 이전에 소가족을 위한 간편식 배달이라는 미션을 넘어 ‘초소량 번쩍배달 B마트’라는 새로운 유통채널로서의 포지셔닝을 제안했고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었는데요, 차별적인 요소로 작용했던 ‘초소량’ 컨셉이 이제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장에 한계가 온 것이죠. 클라이언트는 초소량 번쩍배달이 아닌 이마트, 마켓컬리와 경쟁하는 일상적인 장보기 플랫폼으로의 새로운 포지셔닝을 원했습니다.
배달 봉지를 카트로 바꾸어야 하나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만큼, 어려운 미션이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역시 가장 큰 차별적인 무기로 로켓배송, 새벽배송을 넘어선 한 시간 이내 빠른 배달을 강조했습니다. 버릇처럼 분석했던 ‘나’의 장보기 경험을 다각도로 시뮬레이션 해봅니다. ‘나’의 장보기 경험에서의 일상적인 장보기의 본질은 ‘신선식품’이었습니다. 아무리 저렴해도, 아무리 빠르다 해도 신선하지 않으면 경험하고 싶은 장보기가 아니었습니다. 가설 검증을 하고 빠른 배달이라는 무기까지 더해 ‘신선함을 더 신선하게’라는 캠페인 전략을 세웠고, B마트는 ‘분단위 초신선 장보기’라는 리포지셔닝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광고 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경험에서 보다 예민하게 안테나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렇게 광고 전문가 이전에 일상의 전문가가 되어갑니다. ‘나’는 또 이렇게 이 글을 쓰는 과정의 경험을, 그 느낌을 버릇처럼 분석하고 기억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