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루는 기술
처음으로 이성에게 편지를 썼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전 아마도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교회 여름 수양회를 마친 후였는데요. 서울로 돌아오고 일주일 후, 그곳에서 친해진 소녀에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꼭꼭 눌러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편지를 썼던 그때는 제가 훗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오로지 처음 이성에게 써보는 글쓰기에 매우 긴장하고 식은땀을 흘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한 글자를 쓰고 바꾸고, 한 단어를 쓰고 고치고, 한 문장을 쓰고 지워버리고… 잘 써진 편지란 것이 어떤 건지 개념조차도 없었기에, 몇 줄 안되는 글을 써 내려가면서, 어떻게 하면 그 소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 또 고민하였겠죠. 물론 다음 날 아침 그 편지는 쓰레기통을 향했고, 같은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 만요.
그 후 핸드폰이란 기계가 발명되었습니다. 동시에 함께 ‘문자’라는 소통방법이 함께 등장했죠. 그랬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됩니다. 지인의 애매한 농담에 ㅋ가 나을지 ㅋㅋ가 나을지. 아니면 ㅎㅎㅎ 하는 게 나으려나? 사실 친구의 문자에 대한 리액션 고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상사와 소통할 때 훨씬 더 복잡해지니까요. 그분들의 말에 대답하려면 ‘넵’이 나을지 ‘네넵’이 나을지. 또 ‘넹’도 심심치 않게 쓸모 있어 보입니다. 도대체 왜 현실세계에서 <네>는 괜찮은데 활자화된 <네>는 그리도 시큰둥해 보이는지… 어쨌든 이렇게 온갖 상대방의 마음에 신경을 쓰면서 자음 하나, 모음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글을 보내 본 경험 다들 한 번씩은 있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음’하나로 바뀔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누군가를 ‘글자 하나’로 더 토라지게 하거나,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사람의 마음은 어떤 정형화된 객체가 아니라, 작은 바람에도 쉽게 일렁이고, 내뱉는 날숨 하나에도 요동치는 섬세한 깃털 같은 존재라는 것. 일찍이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 하였고, 또한 애잔한 감정을 담아 일필휘지에 써내려 간 것 같아 보이는 김소월 님의 <진달래>가 사실은 독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3년이란 깊은 퇴고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렇듯 우리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혹은 위대한 작가들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일, 커뮤니케이션이란 것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소통>이란 1차적 해석이 있지만, 그 본질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 함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의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일이 사실은 그토록 힘든 일, 즉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스스로 전문가임을 자청하며, 여러 가지 최신 광고전략 모델에 소비자를 대입하고, 눈부신 IT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 근본에는 결국 이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만 되는 일임을 잊어선 안되겠습니다. 과거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음 하나, 모음 하나에 얼마나 진심을 다했는가를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히 최신 기술만 믿고 있어서는 그렇게 쉽게 해답이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물론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 그리고 AI의 등장이 우리가 사람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에 조금 더 쉽고 정확한 길을 내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바라보며 모든 것을 의탁하진 맙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그것은 아슬아슬하고 야들야들하고, 건들면 톡 터질 것 같은 꽃봉오리보다 더 섬세한 그 무엇을 움직이는 것이고, 그렇기에 그것은 단순한 공식과 계산, 테크놀로지만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고정된 템플릿으로 실시간 바뀌는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렇듯 우리의 업은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움직이는 일.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때로 백만 명 혹은 천만 명 이상의 마음이라면, 적어도 사춘기 시절 처음 써본 편지만큼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과 진심이 필요하진 않을까요?
눈만 뜨면 새로운 용어와 기술이 등장하는 시대. 때로는 어떤 툴과 기술이 고객의 마음을 돌리는데 효과적일지 그 자체가 더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최첨단 분석 기법으로 모든 검토를 마친 후 잘 짜진 공식에 대입하면 우리가 원하는 답이 한 번에 나올 것 같아 살짝 들뜨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앞서 한번쯤 스스로에게 되물어 봅시다.
과연 지금 나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얼마큼 <진심>인가를 -